알아두면 좋은 것들

[스크랩] 비경에, 물소리에, 포도향에 취한다

몽지람 2013. 2. 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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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백화산 호국길은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 하늘을 덮은 다양한 나무들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지난 4월에 개통된 경북 상주의 호국길은 모동면 옥동서원을 시작으로 백화산(해발 933m) 옆을 흐르는 구수천(龜水川)을 따라 반야사 옛터에 이르는 5.1km 산길이다. 백화산과 호국길 모두 아직까지 대중적인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고, 그래서 끌리는 곳이다.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등 원시림 같은 활엽수에, 하늘 높이 솟은 잣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는 낭만적인 길에 '호국(護國)'이라는 다소 진지한 이름을 붙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말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만들었던 곳이고, 고려 때에는 황령사(상주시 은척면) 홍지스님이 이끄는 차라대가 몽골군을 몰살시킨 곳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백화산 고지에는 신라시대에 완성했다는 금돌성과 대궐 터가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몽골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저승골과 전투갱변의 이야기는 고려시대 역사를 기록한 고서 곳곳에 남아 있다.

상주는 인구 13만의 아담한 지방도시지만 조선시대까지만 영남의 중추도시였다. 신라 때는 전국 6주 중 하나였고, 고려시대에는 전국 8목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하는 사실상 영남의 중심이었다. 경상도라는 이름 자체가 경주와 상주의 앞 글자에서 온 것만 보더라도 당시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수많은 역사의 흔적이 남이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날 트레킹을 주재한 성백영 상주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상주는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입니다. 단순히 걷기 위한 길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호국'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백화산 주변 걷기길이 모두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출발지는 황희 정승의 청렴함이 서려 있는 옥동서원


백화산에는 한성봉(933m)과 만경봉(639m)이 남북으로 솟아 있고, 이 두 봉우리가 이루는 협곡에 금강의 최상류인 구수천 물길이 흐르고 있다. 큰 강 상류가 거의 그렇겠지만, 구수천 물살은 세차고, 한성봉과 만경봉은 가파르다.

한성봉은 백두대간의 봉황산과, 만경봉은 백두대간의 국수봉과 이어져 있다. 봉황산에서 온 산줄기가 천택산과 개터재를 지나 나비재에서 나비처럼 훨훨 솟구쳐 오른 게 백화산 한성봉인데 주행봉에서 다시 한 번 더 솟구친 후 월유봉 앞에서 멈추어 선다. 국수봉에서 올라온 또 하나의 산줄기는 지장산을 거치고 오도치를 넘어 만경봉을 솟게 했다. 그 만경봉 밑에 방촌 황희 정승을 모신 옥동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옥동서원이 호국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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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10억 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 호국길 조성의 주인공 성백영 상주시장은 "호국길이 상주의 명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동서원은 1518년(중종 13년)에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 황희(黃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했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물로는 황희의 영정과 < 갈천문집(葛川文集) > 외 수백 권의 고서가 있다.

옥동서원은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황희 정승을 모신 사당답게 참으로 소박하다. 기단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했고, 기와를 떠받들고 있는 육중한 기둥에는 단청 하나 들어가 있지 않다. 몇 해 전만 해도 옥동서원은 논과 숲 사이에 가려져 있어서 멀리서는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서원 앞이 잘 정비되어서 고풍스런 모습을 감상하기에 좋다.

옥동서원을 한 번 쭉 둘러보고 나오면 호국길 4.5km 코스의 트레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길은 두 가닥이다. 하나는 옥동서원 왼쪽 오솔길로 진입해 산줄기를 타고 가는 옛길이고, 또 하나는 오른쪽 농로를 따라 걷다가 백옥정 정자를 향해 목책 데크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사색하며 걷기 좋고, 두 번째 길은 단숨에 용머리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서 시간이 절약된다. 최근에는 접근성이 좋은 백옥정 직선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성백영 시장은 백옥정 직선 길을 선택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물소리를 빨리 듣고 싶어서"였다.

백옥정에서 눈과 귀를 씻고, 세심석에서 마음을 씻고


농로 구간을 몇 백 미터 걷고 나면 목책 데크가 나타난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몇 걸음 옮기고 나면 이내 적응이 된다. 데크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여덟 폭 병풍을 펴놓은 것 같다는 백옥정이다. 걷기길에서 살짝 벗어나 용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백옥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정자와 다를 바 없지만 막상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여서 상주 들녘을 조망하기에 제격이다. 실제로 백옥정은 백화산의 웅장한 모습과 모동의 특산품 포도 들판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조망대로 유명하다.

눈만 즐거운 게 아니다. 방금 전까지 전혀 들리지 않던 구수천 물소리가 귀를 시원하게 해준다. 성백영 상주시장이 듣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물소리다. 물소리를 들으며 오감을 집중하다 보면 후각도 즐겁다. 상주는 포도의 고장이다. 들녘 대부분이 포도밭이다. 한여름의 백옥정에서는 상주 포도의 진한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백옥정에서 왔던 길을 20m 정도 되돌아 나오면 본격적인 걷기길 시작된다. 경사가 급한 잣나무 숲길을 내려가다 보면 복잡한 마음을 물로 씻는다는 세심석(洗心石) 바위가 나온다. 성인 남성 스무 명도 거뜬히 올라간다는 너른 바위이다. 이곳에 머물러 눈을 감고 있으면 구수천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잡념이 사라진다. 이 물소리는 이후 이어지는 호국길 구수천 팔탄(八灘) 전체에서 계속 들을 수 있다. 호국길이라는 이름 외에 한 가지 이름을 더 붙일 수 있다면 '물소리길'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팔탄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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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호국길은 80m에 이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있다.

"팔탄은 '여덟 개의 여울'을 말합니다. 호국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여덟 개의 여울이 나오는데 그곳마다 볼거리가 있습니다. 그 여덟 곳에서 잠시 쉬면서 경치를 구경하면 걷는 재미가 더합니다."

트레킹에 동행한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의 황인석 사무국장의 설명이 맛깔스럽다.

임천석대는 비경 중 비경


세심석을 지나면 구수천 옆으로 나무데크와 나무 잘 다듬어진 시원한 그늘 숲길이 2km가량 이어진다. 이 길은 하늘까지 덮어주는 울창한 나무 때문에 그냥 걷기가 아깝다. 장성한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가 계속 이어져 있다. 꿈속에서나 보았던 그런 숲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동행한 일행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다.

"이 길은 호국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나무숲이 지붕을 이루는 길이 많지 않은데, 이곳은 한여름에 와도 하늘이 보이지 않아요. 바닥도 자갈이 없는 흙길이라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호국길 완성을 위해 일선에서 동분서주 활약했던 상주시청 전병순 계장이 이야기를 꺼낸다. 상주가 고향이라는 그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도 상주가 좋아서 내려왔다는 개인사도 싱그럽게만 들린다. 그는 상주의 호국길을 자랑하는 게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그의 등에는 일행들에게 나누어줄 커다란 수박 한 통이 매달려 있었다.

숲길이 끝나자 '저승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80m 길이의 출렁다리가 나왔다. 이런 등골 오싹한 이름이 붙은 것은 다리가 위험하거나 여행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리 건너편 지명이 '저승골'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저승골은 홍지스님과 고려군이 몽골의 차라대 군사를 격파한 곳이다. 당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협곡 중에서 협곡이라 지형을 아는 군대가 승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상상이 가능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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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위)임천석대에는 고려시대 최고의 악사 중 한 명이었던 임천석이 고려의 충절을 지키며 목숨을 던진 일화가 스며 있다. / 호국길은 지루하지 않다. 출발지인 옥동서원에서 반야사에 이르려면 물을 세 번 건너야 한다.

이전까지는 숲길이었지만 저승골부터는 계곡 건너 깎아지른 절벽이 강원도 심산유곡 같은 절경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만치에 구수천 4탄(四灘)인 '난가벽'이 보이고 구수정(九水停) 정자가 있는 '임천석대'가 나온다.

임천석대는 고려 악사 임천석이 고려가 멸망하자 투신했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임천석은 고려시대 악인 중에 거문고를 가장 잘 탔다고 알려지는 인물이다. 조선 태조가 그의 재주를 높이 사 거듭해서 한양으로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바로 이곳에서 투신해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냈다. 그가 몸을 던진 임천석대는 일부러 서지 않으려 해도 발걸음이 멈춰질 만큼 경치가 뛰어나다. 경치만 따지면 그 어느 절경 부럽지 않은 곳이다. 바위를 잘 살펴보면 중앙에 부처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 바위를 부처바위라 부른다.

구수정 정자는 한시름 쉬고 가기 제격이다. 배낭에 담아온 음식을 먹어도 좋고, 모래톱이 있어서 물놀이하기에도 좋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이 늘 함께 있는 곳이다. 일행이 구수정에 오르자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쳐놓는다. 산행 중에 먹는 음식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4km를 걷느라 쌓인 피로가 음식을 보자마자 이내 사라졌다.

구수천을 세 번 건너다


정자 주변에는 임천석대에 대한 비석과 안내판이 있고, 이곳을 벗어나면 이정표가 나오면서 곧 하천을 건너야 한다. 물이 적을 때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건널 수 있지만 물이 많을 때는 건너지 못한다. 물을 건너는 게 불편한 여정이라면 여기서 되돌아가야 한다. 만약 물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다면 양말을 신은 채가 낫다. 물속의 바위들은 미끄러운 이끼를 안고 있어서 맨발이나 운동화를 신어도 넘어지기 일쑤다. 일단 물을 건너가면 또 다시 물을 건너야 한다.

그렇게 두 번의 물길을 건너고 나면 반야사 옛터와 경상북도 상주시라는 도계의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이 반야사 옛터라는 사실은 여기저기 보이는 기와 파편으로 이내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성덕왕 시대에 지어진 반야사는 신라 불교양식을 고스란히 계승한 절로 유명하다. 지금은 1km 하류로 내려가 충북 영동 황간면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반야사까지 가려면 물을 한 번 더 건너야 한다.

"호국길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요. 길이 어렵지는 않은데 걷다 보면 계속 볼거리가 나타나죠. 처음 호국길을 조성할 때 '그래 하자'고 단숨에 이야기했던 것도 길이 주는 다이내믹함 때문이었습니다. 이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좋습니다. 앞으로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걷기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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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호국길의 출발지 옥동서원은 대원군 시절 서원철폐 탄압에서 살아남은 전국 47개 사원 중 하나이다.

성백영 시장이 마지막 헤어지는 길에 한 말이다. 호국길은 단조롭지 않다. 물소리와 포도향이 있고, 중간 중간 역사의 이야기도 있다. 옥동서원에서 반야사에 이르려면 세 번이나 물을 건너야 하지만 이마저 호국길이 주는 흥미로움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물을 만나고, 몸이 무거워질 무렵에 시원한 정자를 만날 수 있는 호국길을 걸으면 시간의 흐름 정도는 새까맣게 잊을 수 있다.

백화산 호국길 코스 개요


옥동서원(0.5km, 10분)→백옥정(0.45km, 10분)→세심석(2.2km. 40분)→출렁다리(0.3km, 5분)→임천석대(0.3km, 5분)→첫 번째 물 건너기(0.5km, 10분)→두 번째 물 건너기(0.6km, 10분)→세 번째 물 건너기(0.3km, 5분)→반야사(왕복 10.3km, 3시간 소요)

교통

승용차로 경부고속국도를 타고 가다가 황간IC를 빠져나와 오도치를 넘어 옥동서원으로 향하면 된다. 중부내륙고속국도(청원-상주) 이용 시에는 화서IC를 빠져나와 화동 모서 모동을 거쳐 옥동서원으로 접근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대구, 대전, 청주, 구미, 영동 등지에서 고속버스, 직행버스, 열차 등을 이용해 황간까지 가면 된다.명소

옥동서원 명현 방촌 황희 정승 영정을 모신 서원으로 1714년 건립되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특이점은 회보문(懷寶門), 청월루(淸越樓), 옥동서원(玉洞書院), 온휘당(蘊輝堂)의 현판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52호.

구수정 고려 악사 임천석(林千石)이 국운이 기울자 거문고를 들고 구수천 여울목에 몸을 숨긴다. 토굴과 정자를 짓고 그 앞 바위에서 매일 거문고를 켜면서 살다가 고려가 망하자 바위에서 투신한다. 그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투신한 바위를 '임천석대'라 부르게 되었고, 정자는 2012년 3월 호국길을 정비하면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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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산]상주 백화산 호국길 개념도

반야사 영동의 사찰이다. 상주시의 경계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보물 1371호인 석탑은 영동 반야사 석탑이라고 되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소재 저승골 탑벌에서 옮겨 간 것이다.

숙식

옥동민박(010-4000-1431)에서 민박과 매식이 가능하다(백숙, 매운탕,
버섯찌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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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름다운 추억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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