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글

사람들은 그런 사랑이 그리운 게 아닐까?

몽지람 2007. 2. 1. 11:15
사람들은 그런 사랑이 그리운 게 아닐까?
                     

                       

 

 

              “말리와 나”

                                (존 그로건 지음|이창희 옮김|세종서적|1만원)

 

신혼부부 존과 제니가 개를 키우려 생각한 건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

부모가 될 준비가 전혀 없었던 두 사람은 덜컥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 개를 기르면 연습이 될 거야.”

 

강아지 ‘말리’는 그렇게 이들의 식구가 됐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種). 우직한 사냥개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말리의 집중력은 아메바 수준이었고,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녀석의 똥더미 속엔 장난감 군인이나 찌그러진 콜라뚜껑, 으깨진 볼펜이 나오기 일쑤였다.

비싼 금목걸이를 삼켜서 나흘 동안 배설물을 헤집은 적도 있었다. 기운은 또 어찌나 센지 40㎏가 넘는 체구로

커버린 말리가 달려들면 넘어지지 않고는 못 배겼다. 훈련소 조련사조차 “수업료는 전액 환불해드리겠어요”라고

두 손을 들었으니까.

 

그래도 기특한 구석이 있었다.

제니가 아이를 유산했을 때 이 천방지축 망나니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말리는 큰 머리통을 제니의 무릎 위에 올린 채 거대한 인형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제니는 녀석의 털가죽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그날 존과 제니, 그리고 말리는 서로 껴안은 채 오랫동안 슬픔을 나누었다.


첫 아들 패트릭이 태어나자 말리는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아기 주변에 저렇게 힘센 동물을 그냥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말리는 아기가 연약한 존재라는 걸

아는 듯 했다. 말리는 아기가 옆에 있을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기가 제 몸을 타고 오르거나 귀를 잡아당기고,

심지어 눈을 찔러도 녀석은 가만히 있었다. 말리는 아기 기저귀에 코를 처박고 냄새 맡기를 즐겼을 뿐이다.

  

존과 제니는 말리와 열세 해를 함께 보냈다. 그 동안 아이 둘이 더 태어났고, 직장을 두 번 옮겼다.

개의 나이 13살은 사람으로 치면 아흔이 넘은 나이. ‘고삐 풀린 망아지’ 말리는 온갖 나쁜 버릇을 다 보여줬지만

집안에서 실례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늙은 말리는 이제 배설을 통제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집에서 ‘사건’을 일으켰을 때 말리는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정말 참는 데까지 참았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존이 집에 들어오면 문간에서 마음껏 달려들던 녀석은 이제 계단 하나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손뼉을 쳐도

듣지 못했고, 탐스럽던 털은 무더기로 빠졌다. 음식을 먹으면 곧 토했다.

“이제 방법은 영원히 재우는 겁니다.” 수의사가 말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 칼럼니스트인 저자 존은 말리를 영원히 보내고 녀석을 추억하는 칼럼을 신문에 썼다.

“말리는 내가 아는 개 중 훈련소에서 쫓겨난 유일한 개다. 하지만 말리는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개를 키우며 일어나는 잔잔한 이야기를 쓴 ‘평범한’ 이 책은 놀랍게도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연속 40주

논픽션 1위를 기록하며 150만부가 팔렸다.

왜일까?

존과 제니는 ‘목적’ 때문에 말리를 키웠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조건’이 없었다는 것.

사람들은 그런 사랑이 그리운 게 아닐까.